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2018.01 독후감] 다채롭고 현실감 있는 동시대 희곡의 매력
    트레바리 독후감(2016-2022)/극극(2017-2019) 2022. 5. 18. 18:47
    • 클럽명: 극극-블루

    2018년 1월 모임책


    솔직히 '동시대 미국 대표 희곡 선집'을 읽으면서 놀랐다. 왜냐하면 인물들도 하나하나 너무나 입체적이면서 갈등도 다양한 데다 같은 시대라 그런지 문화와 언어는 다르지만 공감대가 확 와닿았다. 무엇보다도 대사가 전혀 이질적으로(번역투라든가) 느껴지지 않아서 이게 원작 자체가 잘 쓰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저자가 번역을 잘했는지 궁금해졌다.

     

    희곡을 학부 때도 강의를 들었고, 전공 수업에서 1인극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때의 경험이 좋았던지 미국 교환학생을 가서는 '연기(acting)' 수업도 들었다. 그리고 영어로 독백, 2인극, 3인극 등도 다양한 학생들과 짝을 이뤄서 호흡을 맞춰보기도 했다. 그때도 미국의 유명한 현대 작품들을 주로 다뤘는데 이번 희곡에 나온 작품들이 더 강렬하고 인상적이면서 흥미로웠다. 이유는 역시나 모르겠다. 아마 작품성이 더 있거나 더 현대적이거나, 아니면 내가 변했거나 그중 하나일 거다. 

     

    한 작품을 언급하기에는 깊이 있는 읽기가 더 필요한 것 같아 그냥 대략적인 느낌만 얘기하자면, 너무나 미국스럽기 때문에 한국 정서 상 공감되는 작품이 <주무세요, 엄마> 정도였다. 나머지 작품은 흑인 가족 이야기(피아노 레슨), 동성애(미국의 천사들), 정치적 올바름(올리애나) 등인데 동성애와 정치적 올바름이 보편적인 주제일 순 있겠으나 한국의 것과는 상당히 많이 달라 극을 올리기엔 어려워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토니 쿠쉬너 작의 <미국의 천사들>이 가장 문제작이면서 흡입력이 있었다. 지적인 작품이면서도 성적인 묘사와 욕설이 너무 리얼했다. 지금이야 동성 결혼이 합법이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시절, 온갖 권력욕이 판치는 정치권에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성 정체성을 누르는 인물들의 모습들도 흥미로웠다. 읽으면서 현재 브로맨스 물과 남성 2인극이 범람하는 한국의 연극 및 뮤지컬에서 이 작품을 과연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중도 생겼다. 진짜 퀴어물과 퀴어를 우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미국 드라마나 아니면 그래픽 노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피아노와 노래로 극을 전개해가는 <피아노 레슨>에서는 남매의 아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고된 버니스의 삶과 남동생과의 생각 차이가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보이 윌리: 누난 밑바닥에 살지 몰라도 난 아냐. 난 인생의 꼭대기에서 살 거야. 내 인생을 밑바닥에 내동댕이 치지 않을 거야, 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취향이 좀 다르지.

    버니스: 너도 우리 모두랑 똑같이 밑바닥 인생이야(p.409).

     

    가장 문화적으로 보편성이 있고 무난했던 극은 자살을 소재로 한 <주무세요, 엄마>였다. 이 극은 신기한 게 등장 인물도 모녀 두 사람이고, 집 안에서 주고받는 대사가 전부다. 그런데 마지막 여운이 다른 극보다 더 강했다. 제시는 결혼생활에 실패했고, 병에도 걸려 그녀의 인생을 불행하다면 불행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 수도 있고 죽음을 결심할 정도의 고통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그녀는 결국 죽음을 택한다. 끝까지 만류하던 제시의 엄마는 딸의 자살 앞에서 무너진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모가 준 생명을 부모 앞에서 끊는 건 큰 불효이자 죄악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애초에 받고 싶어서 받은 생명이 아니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인생이 아닌데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또 삶의 의미를 오랫동안 찾지 못한다면 살 지 말 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을 하고 어머니와 마지막 시간을 보낸 제시는 비로소 마음의 평온을 찾았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작품들이 다 좋았지만 <올리애나>는 아쉬웠다. 이 극은 정말 '정치적 올바름(또는 여기서 번역된 대로 정확성, political correctness)'를 다루려고 한 걸까, 아니면 그걸 전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캐롤이라는 캐릭터를 그렇게 설정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페미니즘을 욕 먹이기 딱 좋겠다는 찜찜함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은, 오히려 결점이 하나씩 있는 인물들이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으면서 사랑을 갈구하는 공통적인 대목들이 보여 허구의 인물들이지만 이들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독후감을 마친다. 

Designed by Tistory.